사본 시리즈

법화경사본 시리즈

법화경 사본

동양철학연구소와 창가학회는 1997년부터 사본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의 연구기관 및 연구자의 협력을 받아 ‘법화경 사본 시리즈’ 발간을 추진했다.
이것은 각국이 보존한 귀중한 법화경 사본을 선명한 컬러사진으로 촬영한 ‘사진판’과 사본의 ‘읽기’를 로마자로 바꾼 ‘로마자판’의 두 종류다.

페트로프스키본을 지키기 위한 노력

나치스 독일군의 폭격에서 목숨을 걸고 ‘법화경 사본’ 을 지키다

산스크리트어 ‘법화경’ 사본 (카슈가르본, 이른바 페트로프스키본) 8세기 서사
산스크리트어 법화경 사본
(페트로프스키본이란)
중국 신장의 카슈가르 주재 러시아총영사 니콜라이 페트로프스키가 1892년에 입수했다. 당시는 각국에서 앞다퉈 중앙아시아에 탐험대를 보내던 때였다. 러시아 황실의 명령으로 페트로프스키도 사본을 수집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보냈다. 1908~1912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판한 ‘난조·케른본’ 교합에도 사용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출토한 데다 오랫동안 전승된 사본이기에 매우 중요한 법화경 사본으로 본다.
독일군의 맹렬한 폭격에 피난하는 사람들
현재 러시아 동양고문서연구소
“당시의 연구원 덕분에 법화경 사본 등이 현존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 동양고문서연구소의 보로뵤바 박사가 이렇게 증언한다. “포위된 900일 동안 남녀 두 사람이 우리 연구소의 사본을 지키는 데 온힘을 다했습니다. 지하실에 있던 문서가 파손되지 않도록 때때로 상자를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는 등 필사적으로 보호했습니다. 이 두 사람 덕분에 법화경 사본이 현존할 수 있었습니다.”

(1996년 2월 17일자 세이쿄신문)

기아와 폭격으로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군은 러시아•동양학연구소(현재 동양고문서연구소)에 있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900일, 2년 반 동안(1941년 9월~1944년 1월)포위해 식료품과 연료 보급로를 차단했다. 시민 300만명을 모두 굶겨 죽이려는 악마와 같은 작전이었다. 기아와 폭격으로 100만명이 넘는 병사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굶어 죽은 사람이 약 6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민중은 단결해 그 맹공격을 견디고 끝까지 싸워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