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막고굴

법화경의 가르침을 그리다

둔황사본

우연히
보물의 빗장이 열리다

세기의 대발견이라 일컫는 ‘둔황 사본(둔황 문서)’의 발견은 우연한 결과였다. 1900년 6월, 막고굴(莫高窟)에 있던 왕위안루(王圓籙)가 제16굴 통로 벽면 아래쪽에 생긴 균열을 보았다. 벽을 두드리자 빈 굴에서 나는 울림소리가 들려서 벽면을 조금씩 뜯자, 벽 안에 4평 반 정도 되는 다른 굴(비밀방)이 있었다.(발견 경위에는 다른 설도 있음)
그곳에는 수많은 경전과 고문서류가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이 공간은 나중에 제17굴로 번호를 매기고 ‘장경동(藏經洞)’이라 불렀다.

외부에서 16굴의 전실로 들어가면 가운데 끝에 불단이 보인다.
오른쪽 앞에 17굴의 입구가 보인다. 17굴을 발견하고 경전을 16굴로 옮긴 당시의 사진.
장경동을 발견한 왕위안루.
그의 발견이 둔황학 성립의 실마리가 되었다.
영국의 아우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가 장경동에 들어가
문서를 선별하고 있다.
고문서류 5만점 중 4만점이 해외로 유출
막고굴의 경전과 고문서류가 발견됐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영국의 탐험가 아우렐 스타인(1862~1943년)은 수천점에 이르는 문서류를 싼값에 구입해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가지고 갔다. 이듬해에는 중국어에 능통한 프랑스 동양학자 폴 펠리오(1878~1945년)가 찾아와 산더미처럼 쌓인 문헌 중에서 가치가 높은 것을 골라 수천 점을 구입해 파리로 가지고 갔다. 이렇게 장경동이 발견되자 각국의 탐험가가 막고굴을 잇달아 방문해, 장경동에 높이 쌓여 있던 유물을 순식간에 국외로 유출해 갔다. ‘둔황 사본’의 귀중한 경전과 고문서류는 5만점에 달하는데, 기원후 4세기부터 11세기까지의 역사를 비롯해 지리·문화 등 그 밖의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당시를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