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유포의 역사

많은 선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키며 전한 법화경의 역사

인물

많은 선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키며 전한 법화경.
석존의 깨달음에서 시작한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더 나아가 한반도와 일본까지 전한 역사를 법화경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중심으로 소개한다.

니치렌

법화경 정수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나타내
‘모든 사람이 성불하는 길’ 밝혀

법화경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정하다
니치렌(日蓮: 1222~1282년)은 아와지방(현재 지바현 남부)의 어촌에서 태어났다. 열두살이 되던 해, 아와지방의 세이초사(淸澄寺)에 들어가, 도젠보를 스승으로 섬기고 열여섯살 때 출가한다. 10년 동안 가마쿠라, 교토, 나라 등지에서 수학하고, 동아시아에 전해진 석존의 교설(敎說)이 담긴 여러 경전 중에 ‘법화경’이 불의(佛意)를 밝힌 최고의 경전이라고 정했다.
‘남묘호렌게쿄’의
창제를 신앙의 근본으로 삼다
서른두살 때인 1253년 4월 28일 고향인 아와지방에서 ‘법화경’의 핵심인 ‘모든 부처의 인(因: 수행)과 과(果: 깨달음의 경지)를 갖춘 근원의 일법(一法)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중생구제를 위한 최고의 법으로 넓히겠노라고 선언한다. ‘남묘호렌게쿄’의 창제를 신앙의 근본으로 삼은 것은 불교역사상 처음이다.
1259년에 발생한 ‘대기근과 역병’으로 괴로워하는 민중의 양상을그린 삽화
대지진을 직접 경험하고
민중구제를 위해 일어서다
1257년 8월 23일, 대지진이 일어나 가마쿠라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는다. 니치렌은 이 지진을 직접 경험하고, 눈앞에 보이는 참혹한 현실에서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행동한다. 1260년 7월 16일, 당시 최고권력자인 호조 도키요리에게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을 제출한다. 니치렌은 ‘입정안국론’에서, ‘법화경’의 만인성불 사상을 경시하는 정신적 풍조를 엄하게 규탄하고, 민중을 괴롭히는 사상적·종교적 혼란을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권력자 및 그들과 결탁한 승려들이 니치렌을 계속 탄압했다.
‘다쓰노구치법난’을 계기로 신앙의
대상인 본존(本尊)을 도현하다
1271년 9월 12일, 니치렌은 생애 최대의 법난(法難)인 ‘다쓰노구치법난’을 겪지만, 참수를 면하고 사도에 유배된다. 이 법난을 계기로 ‘법화경’의 허공회의식(虛空會儀式)을 사용해 본존(本尊: 문자 만다라)을 도현한다. 사도유배 때 저술한 ‘개목초(開目抄)’에서 말법의 정사(正師)로서의 자각을 표명하고, ‘관심본존초(観心本尊抄)’에서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본존의 의의를 밝혔다. 그리고 만년(晩年)에 9년 동안 미노부(身延: 야마나시현)에서 지내며 ‘선시초(撰時抄)’와 ‘보은초(報恩抄)’ 등을 저술하고, 문하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 지도·육성했다.
1271년 ‘다쓰노구치법난’ 때, 무장한 병사들이 마쓰바가야쓰 초암을 습격하는 모습을 그린 삽화
법화경을 신독(身讀)하고
‘법화경 행자’라고 칭하다
‘법화경’에는 “이 경을 포교하면 극심한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반복해서 씌어 있다. 니치렌은 이 박해를 실제로 체험함으로써 ‘법화경’을 몸으로 읽은 실천자라고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를 ‘법화경 행자’라고 칭한다. 서른아홉살부터 쉰살까지 11년 동안, 목숨까지 위협받는 대난을 네 차례 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