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유포의 역사

많은 선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키며 전한 법화경의 역사

인물

많은 선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키며 전한 법화경.
석존의 깨달음에서 시작한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더 나아가 한반도와 일본까지 전한 역사를 법화경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중심으로 소개한다.

아소카왕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무력이 아닌
‘다르마(법)에 의한 정치’
아소카왕(아육왕<阿育王>)은 마우리아 왕조 제3대 왕(생몰연대 미상, 재위 기원전 268~232년경). 전쟁을 일으켜 처참한 살육을 행한 일을 깊이 후회하고 불교에 귀의했다. ‘무력 정복’을 포기하고 ‘다르마(법)에 의한 정치’를 목표로 했다. 도로를 정비하고 우물을 팠으며 요양시설을 건설하는 등 복지사업을 펼쳤다. 불교 이외의 종교도 보호했다.
아소카왕 사자의 주두(柱頭)
아소카왕 석주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의 주두이다.
석존이 처음 설법한 성지(聖地) 녹야원(사르나트)에 있다.
사자 네 마리를 올린 대좌(臺座)에는 원형 법륜이 배치되어 있다.
이 법륜은 오늘날 인도 국기의 문장(紋章)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도 각지에 불탑을 세우고
석주 등에 법칙(法則) 새겨
사르나트의 석주비문
아소카왕 석주의 일부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아소카왕이 불교 교단의 분열을 훈계하면서
‘출가한 몸으로 교단을 파괴하는 자는 환속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 새겨져 있다.
각국에 사절단을 파견
아소카왕은 이집트, 마케도니아, 시리아 등 서방의 나라에도 사절단을 파견하고, 전쟁이 아닌 친교를 맺어 평화를 추진하자고 외쳤다. 스리랑카에는 마힌다 왕자와 공주를 파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