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유포의 역사

많은 선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키며 전한 법화경의 역사

인물

많은 선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키며 전한 법화경.
석존의 깨달음에서 시작한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더 나아가 한반도와 일본까지 전한 역사를 법화경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중심으로 소개한다.

석존

불교의 탄생

깨달음을 연 땅, 부다가야
석존이 깨달음을 연 곳인 부다가야. 가운데 있는 건물이 대보리사(大菩提寺: 사진 가운데, 높이 55m)이다.
7세기경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생로병사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
기원전 5세기경의 사람. ‘석존(釋尊)’은 ‘석가모니(석가족의 존자<尊者>)’라는 뜻이다. 히말라야 산기슭(현재 네팔)의 작은 도시인 카필라바스투에서 석가족의 슈도다나왕(정반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스물아홉살 때, 인생의 무상(無常)과 괴로움을 통감하여,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했다. 6년 동안 철저히 고행(苦行)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과도한 고행을 버리고 명상에 들어갔다. 서른다섯살 때,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생사의 고뇌에서 벗어나 불타(佛陀, ‘깨달은 자’라는 뜻)가 된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열아홉살때 출가해 서른살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인생의 교육자, 인간 지도의 달인으로서 민중을 교화
석존은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처지와 능력 그리고 성격에 맞게 자신의 깨달음을 설했다. 또 석존은, 엄격한 신분제도사회인 고대 인도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에게 “태어날 때부터 천한 사람은 없습니다. 또 태어난 신분으로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행동에 따라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됩니다.”(《수타니파타》136, 나카무라 하지메 역 《붓다의 말》, 이와나미서점) 라고 가르침을 설했다.
여든살 석존의 마지막 여행 - 전도(傳道)를 위해 걸은 350킬로미터
석존은 홍교를 하기 위해 갠지스강 유역의 마을을 중심으로 몇백킬로미터를 걸었다. 여든살이 된 석존은 죽음이 다가왔음을 느끼고, 설법(說法)을 하던 왕사성(王舍城: 라자그리하)에서 고향인 카필라바스투를 향해 전도 여행을 떠났다. 여행하면서 각 도시와 마을을 방문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가르침을 설했다. 일설에 따르면 그 여정은 350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석존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자, 수행승(修行僧)들이여, 여러분에게 고합니다. 모든 일은 과거사가 됩니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수행을 완성합시다.”(《대파리닛바나경》6·7, 나카무라 하지메 역, 《붓다 최후의 여행》, 이와나미서점)
석존의 가르침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기억
석존이 활약한 당시, 인도에서는 성전(聖典)을 문자로 남기지 않고 중요한 가르침을 암송하여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석존의 가르침도 출가수행자 사이에서 암송하여 전승되었다.

현대 학문연구의 성과에 따르면, 전승되는 과정에서 표현이 변화하거나 내용이 정리되면서 다양한 해석이 추가되었다고 생각된다. 석존의 사상적 가르침은 ‘경(經)’으로 정리되고 교단(敎團)의 규칙은 ‘율(律)’로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