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유포의 역사

많은 선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키며 전한 법화경의 역사

역사

‘법화경’을 비롯한 불교경전은 그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 실크로드 일대에 넓혀졌으며, 높이 솟은 카라코람산맥도 넘고 뜨거운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 중국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한국을 통해 일본까지 전해진 불교는 동아시아의 문화, 정치,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한국 법화경

한국의 법화사상

삼국시대
백제의 현광(玄光: 생몰년 미상)은 중국으로 건너가 혜사(慧思)로부터 ‘법화경’의 가르침을 전수받고 귀국하여, 그 가르침을 전했다. 고구려의 파야(波若: 561~613년)는 596년 중국으로 건너가, 천태대사 지의(智顗)에게 사사(師事)했다.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년)는 화엄경 연구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으나, ‘법화경’에도 주목해 《법화경종요》라는 저작을 남겼다.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
신라의 승려 원효(元曉)가 ‘법화경’의 종지(宗旨)와 대요를 기술한 책. 현재 《대정신수대장경》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서문은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사진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남북국시대
‘이불병좌(二佛竝坐)’는 조형적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는데,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사찰 경내 동서쪽에 나란히 탑을 조성한 불국사의 경우가 그 대표적이다.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나타낸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은 법화사상의 ‘이불병좌’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국사 佛國寺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불국사(佛國寺). 6세기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신라의 전성기인 8세기에 대규모로 확충해 774년에 완성했다. 불국사는 이상적인 불국토를 현실에 재현하기를 바라며 세운 사찰이다. 독특한 형태와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사적 제502호)
이불병좌
석가여래가 대중을 향해 법화경을 설하자 많은 보석으로 장식된 거대한 보탑이 대지에서 용출해 공중에 떠오른다.
그 보탑안에는 다보여래가 석가여래의 설법이 진실임을 보증한다.
다보여래는 보탑 안으로 석가여래를 초청해 자리를 나눠 두 부처가 나란히 앉는데 이것이 바로 ‘이불병좌’다.
석가탑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은 남북국시대의 삼층석탑이다.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說法塔)’이며 흔히 줄여서 석가탑(釋迦塔)이라고 한다.
국보 제21호
다보탑
다보탑의 원래 이름은
‘다보여래상주증명(多寶如來常住證明)의 탑’이다.
국보 제20호
고려시대
법화사상은 고려에도 계승되어, 광종 때 체관(諦觀: ?~970년)과 의통(義通: 927~988년)이 중국 천태종의 중흥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법화사상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 후, 의천(義天:1055~1101년)이 한국천태종을 창시했다.
팔만대장경
대장경은 불교 경전을 종합적으로 모은 것을 말한다.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38년(1251)까지 16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판수가 8만여개에 8만 4천개의 경전 말씀이 실려 있어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해인사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국보 제 32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구마라습역 법화경을 고려 우왕 3년(1377년)에 하덕란이 죽은 어머니의 명복과 아버지의 장수를 빌기 위해 옮겨 쓴 것이다.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국보 제211호.
사진제공: 호림박물관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抑佛政策)으로 인해 불교의 모든 사상이 침체를 면하지 못했으나, 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법화경’의 사경(寫經)이 다수 이루어졌다.
《세종실록》 제24권
1424년 4월 20일. 공녕군(恭寧君: 이인<李裀>)을 파견해 대자암(大慈庵)에서 아버지 태종을 추선하는 법화경 법회를 열었다. 그때 올린 문장으로 “‘법화경’은 모든 경을 통괄하고 제불(諸佛)의 본원이다”라고 씌어 있다. “가만히 생각하니, ‘법화(法華)’는 천가지 경(經)을 관할하고 여러 부처의 근본이며, 영험은 헤아리기 어렵고 이익이 가장 큰 것 이로다. 그러나 정미(精微)한 뜻을 들어 보현(普現)하는 것도 반드시 개사(開士)의 넓은 선양에 힘입는 것이며, 이에 능히 찰나 사이에 뛰어오르고 반 마디 말에라도 깨달음을 얻는 것이로다.”
국보 제151호
사진제공: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묘법연화경(언해) 권3
구마라습역 법화경의 본문과 계환(戒環)의 풀이부분만 세조 9년(1463년) 한글로 번역한 것. 세조 7년(1461년)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간경도감에서 목판에 새겨 닥종이에 찍어낸 것으로 상(82장)·하(82-202장) 2책으로 되어 있다. 보물 제1140호.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