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유포의 역사

많은 선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키며 전한 법화경의 역사

역사

‘법화경’을 비롯한 불교경전은 그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 실크로드 일대에 넓혀졌으며, 높이 솟은 카라코람산맥도 넘고 뜨거운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 중국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한국을 통해 일본까지 전해진 불교는 동아시아의 문화, 정치,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중국에서 인도로

목숨을 건 구법여행

한대(漢代) 이후, 서역의 승려와 인도의 승려는 많은 불전(佛典)을 중국에 가지고 갔다. 중국의 승려 중에도 “불교가 탄생한 천축(인도)에 가서 고승을 스승으로 삼아 가르침을 받고 본격적으로 불교의 진수(眞髓)를 연찬하고 싶다.” “불전을 가지고 와서 번역하고 싶다.”면서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동한(東漢: 후한〈後漢〉 25~220년) 말 이후, 인도에 가서 법을 구하려는 승려가 1000명 가까이 늘어 일일이 말할 여유도 없다.”(《입축구법의 승려》와 《구와하라 지쓰조우 전집》 제2권, 구와하라 지쓰조우)고 씌어 있다. 대표적으로 법현(法顯), 현장(玄奘), 의정(義淨)이 있다. 세 명 모두 여행기를 남겼다.
현장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현장(玄奘: 602~664년)은 중국 당나라의 역경승(譯經僧)이다. 629년,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는데, 이 방침을 어기고 혼자 출국했다. 천산(톈산)산맥을 넘어 험준한 카라코람산맥을 지나 인도에 도착했다. 날란다사원에서 거듭 연찬에 힘써 657부에 달하는 많은 경전 등을 가지고 645년에 돌아왔다.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자세히 기록해 《대당서역기》로 정리했다. 죽기 전까지 19년 동안, 불전의 한역(漢譯)에만 전념해 76부 1347권을 번역했다.(75부 1335권이란 설도 있음)
의정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
의정(義淨: 635~713년)은 중국 당나라의 역경승이다. 671년, 불교유적 참배와 경률론(經律論)을 구하기 위해 광주(廣州)를 떠나 바닷길로 인도에 갔다. 25년 동안 약 30개국을 역방(歷訪)하고, 다시 바닷길로 돌아왔다. 695년, 많은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인도 구법(求法) 여행의 내용을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으로 정리했다. 귀국 후, 율(律)을 중심으로 많은 불전을 한역했다.
법현
불국기(佛國記)
법현(法顯: 339?~420년?)은 399년 예순살 무렵, 당시 중국에 없는 율(律: 불교 교단의 규칙)의 완본(完本)을 구하기 위해 장안에서 출발해 육로를 따라 인도에 갔다. 해발 5000m의 치롄산맥을 넘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는 힘든 여정이었다. 또 도적을 만나기도 하는 등 매우 험난했지만 마침내 인도에 도착했다. 414년, 법현은 많은 불전을 모아 스리랑카를 경유하는 바닷길로 귀국했다. 같이 출발한 동지 11명은 도중에 죽거나 인도에 정착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중국으로 돌아온 사람은 법현뿐이었다. 귀중한 인도 구법(求法) 여행의 체험을 《불국기(佛國記)》(별명 《법현전》 또는 《역유천축기전(歷遊天竺記傳)》)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