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유포의 역사

많은 선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키며 전한 법화경의 역사

역사

‘법화경’을 비롯한 불교경전은 그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 실크로드 일대에 넓혀졌으며, 높이 솟은 카라코람산맥도 넘고 뜨거운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 중국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한국을 통해 일본까지 전해진 불교는 동아시아의 문화, 정치,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법화경의 성립

‘대승경전’의 탄생

전통적인 부파불교를 극복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의 전개
석존이 입멸하고 약 100년에서 200년쯤 지나자, 불교 교단은 전통을 중시하는 상좌부(上座部)와 사회변화에 대응하려는 대중부(大衆部)로 분열했다. 그 뒤, 기원전 1세기경까지 약 20개의 부파(部派)로 분열했는데, 일반적으로 분열하기 전의 불교를 원시불교(原始佛敎: 초기불교)라고 부르고, 분열한 뒤의 불교를 부파불교(部派佛敎)라고 부른다.

부파불교는 석존의 가르침을 전지(傳持)하는 출가자와 승원(僧院)의 불교로서 사회적인 세력을 갖고 있었고, 이를 지지하는 재가(在家) 불교신자도 상당수 있었다고 추측된다. 인도에서는 불교가 멸망하기까지 큰 세력이 있었는데, 기원전 1세기경에 부파불교의 일부에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성불’을 수행의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생겼다. 그 집단은 자신들을 대승(大乘: 위대한 탈것. ‘탈것’은 가르침을 뜻함)이라고 불렀다.

대승은 부파불교의 일부를 소승(小乘: 열등한 탈것)이라고 부르면서 엄하게 비판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소승불교라는 호칭이 부파불교 전체를 부르는 말로 정착해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학문적으로 또 국제사회에서 예의상 현재 동남아시아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부르는 일은 피해야 한다.(일반적으로 상좌부불교, 장로파불교라 부른다)
길기트 법화경 사본
위로부터, 논장(論藏) 산스크리트어 사본,
금강경 산스크리트어 사본, 법화경 산스크리트어 사본
새로운 사상을 함께 다룬
‘대승경전’의 탄생
대승불교를 이끈 사람들은 부파불교의 일부를 엄하게 비판하고, 새로운 종교운동을 전개했다. 그 속에서 지금까지의 전승(傳承)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상을 함께 다룬 ‘대승경전’이 잇달아 탄생했다. ‘대승경전’에는 ‘초인적인 부처와 보살이 출현해 인간을 구제한다.’는 가르침과 ‘성불을 목표로 하는 수행자를 위한 다양한 수행법’ 그리고 ‘부처·보살과 경전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의 공덕’이 씌어 있다.
“만인을 석존과 같은 부처로”
법화경의 성립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는 초기 대승경전을 대표하는 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축법호(竺法護)는 ‘정법화경(正法華經)’이라고 번역했고, 구마라습(鳩摩羅什)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번역했다. ‘대승(大乘)’이라는 말은 ‘반야경(般若經)’과 ‘법화경’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추정되며, 이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법화경’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 기원후 2세기경에 걸쳐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추정한다.
백련화
진흙 속에서 청순하게 꽃 피는 ‘백련화(푼다리카)’는
‘법화경’의 경제(經題)에도 포함되어 묘법(妙法)을 비유한다.
법화경의 기본 사상
석존은 ‘법화경’에서 모든 중생이 성불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가르침(일불승<一佛乘>)을 설하고, 사리불을 비롯한 제자들도 장래에 부처가 된다고 예언했다.

또 석존은 아득히 먼 옛날에 이미 성불한 부처였다고(구원실성<久遠實成>) 설해 부처의 장원(長遠)한 수명을 밝히고, 석존이 입멸한 뒤 ‘법화경’을 넓힐 지용보살(地涌菩薩)이 구원의 옛날부터 자신의 직제자라는 사실을 밝힌다.

‘법화경’ 자체에 대한 신앙이 나타나 있는 점도 특징 중 하나인데, 이는 지금까지 암송(暗誦)으로 전해진 경전이 필사(筆寫)된 책의 형태를 취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수많은 보살이 등장해, ‘법화경’의 신앙에 많은 공덕이 있음을 밝힌다.